예배 전쟁 11

학자들은 예배 형식을 6가지로 구분을 합니다.[1]

  1. 고전적 예전 예배 (Formal-Liturgical Worship)
  2. 개신교적 전통 예배 (Traditional Hymn-Based Worship)
  3. 찬양과 경배 예배 (Contemporary Music-Driven Worship)
  4. 은사를 중심으로 한 예배 (Charismatic Worship)
  5. 혼합 예배 (Blended Worship)
  6. 신흥 예배 (Emerging Worship)

순서대로 1번 쪽으로 가면 예배 의식이 천주교에 가깝고 시대적으로도 가장 오랜 예배 형식입니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시대적으로 새로운 예배 형식입니다. 우선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1970-80년대 예배 전쟁의 주요 경쟁자였던 개신교적 전통 예배부터 소개하겠습니다.

개신교적 전통 예배 (Traditional Hymn-Based Worship)[2]

한 개인이 좋아하는 예배는 보통 두 가지 방법으로 형성이 됩니다. 첫째는 교인이 한 교회 공동체에 오래 있게 되면서 그 공동체의 사투리(dialect[3])에 익숙해집니다. 그래서 생소한 환경보다는 익숙한 환경에 더 쉽게 반응을 합니다. 특별히 급작스러운 변화를 원할 이유가 없고 그 공동체의 예배 형식을 좋아하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전통주의란 시간과 익숙함의 함수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내부로부터의 전통주의”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둘째는 한 개인이 그가 접하는 세상 문화에서 이미 익숙해진 환경과 비슷한 예배 스타일을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익숙한 환경에 더 쉽게 반응한다는 사실은 같지만 그 익숙한 환경이 교회 공동체가 아니라 일반 세상 문화입니다. 이런 사람한테는 교회 전통이라는 것이 생소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또한 전통주의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시간과 익숙함의 함수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새로운 세대에게는 이 또한 이전 세대의 전통이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외부로부터의 전통주의”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CCM이 시작된 지 이제 겨우 3-40년이 흘렀는데 벌써 미국에서는 이 또한 사람들이 금방 알아볼 수 있는 하나의 dialect가 되어버렸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millennial과 postmodern 세대를 위한 Emerging Worship (신흥 예배)가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그들에게는 CCM도 하나의 전통이 되어버립니다.

개신교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데 시간이 지나 이들은 찬송가라는 장르로 굳혀집니다. 수없이 쏟아져 나왔던 새로운 찬송가 중에서 다만 몇 곡이 시간을 넘어 우리 찬송가 책에 남았듯이 지금 많이 불리는 CCM 중에서도 다만 몇 곡이 몇 백 년이라는 시간의 시험대를 거쳐 찬송가 책에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전통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국 문학의 전통을 양반전 허생전에서 찾지만 그 당시는 패관문학에 정면 도전을 했던 혁신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CCM 세대가 찬송가 세대를 고리타분하다고 질타하는 것은 좁은 시야의 편견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찬송가 세대가 무조건 CCM 세대를 질타하는 것도 믿음의 어른으로서 좁은 편견이라 하겠습니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자세가 특히 믿는 자에게 필요합니다.

찬송가에는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생활이 믿음의 숨결과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오랜 시간의 검증을 거치고 신학적인 검증을 거쳐 정제된 그런 찬양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 내 영혼 평안해” 시카고 대화재로 전 재산이 불에 타고 네 딸이 파선으로 인해 빠져 죽은 바다를 지나면서 느꼈던 괴로움 가운데 이러한 고백이 나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노예선 선장이 회개하고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장님인 여자가 평생 1만 2000곡의 찬송시를 짓습니다.

필자가 한국에서 교회에 갈 때는 성경책과 찬송가를 가지고 갔습니다. 앞에서 찬송 인도하는 장로님이 “찬송가 몇 장” 하고 외치면 모두가 찬송가를 펴거나 머릿속에 4절까지 훤히 꿰고 있어서 전 교인이 힘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특별히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마이크를 붙잡고 교인들을 대신해서 노래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전 교인이 한 목소리로 찬송을 하면서 서로를 위로했고 같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새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어떤 사람들이 말합니다. 맞습니다. 성경에도 새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된 노래는 버리고 항상 새로운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찬송가를 잊어버린 세대가 찬송가를 처음 듣는 날, 그들에게는 찬송가가 새로운 노래입니다. Phil Wickam이라는 젊은 CCM 가수가 Doxology라는 새로운 노래를 작곡했다고 고등학생들이 필자한테 그 곡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그것은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노래입니다.

필자도 수십 번 불렀던 찬송가를 인도하다가 그날은 갑자기 3절 가사가 내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영어로 찬송가를 인도하다가 한국 번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생생한 믿음의 고백을 읽습니다. 필자에게는 이런 것들도 새 노래입니다. <계속>

[1] Paul Zahl, Harold Best, Joe Horness, Don Williams, Rober Webber, Sally Morgenthaler, Six Views on Exploring the Worship Spectrum,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4.

[2] Ibid., 59-75

[3] dialect란 한영 사전에는 사투리 혹은 방언이라 번역되어 있지만 그 의미는 좀더 포괄적입니다.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그 나름대로의 특수한 환경이 그리고 용어가 파생합니다. 꼭 나쁜 의미로 쓰이지는 않고 다만 그 공동체의 특수성을 말할 때 dialect라는 표현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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