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전쟁 3

사도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1] 믿음 생활에서 이 세가지가 다 중요한데 왜 사랑이 제일이라고 했을까요?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천국이 임하면 믿음도 소망도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겁니다. 믿음도 소망도 다 천국을 목적으로 두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국이 정말 임하면 믿음과 소망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므로 더 이상 필요가 없게됩니다. 그리고 사랑만 남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제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해야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전도, 교육, 선교, 말씀 선포, 등등. 그런데 이들 역시 천국이 임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습니다. 천국에 가면 설교도 그치고, 전도도 그치고, 심방도 선교도 다 그칠 것같습니다. 남는 것은 예배뿐입니다. 그 천상의 예배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럼 목사님들은 모두 실직자가 되겠지요. 그래서 필자는 목사 안수를 받지않고 예배 디렉터를 자청했습니다. 혹시 나중에 천상의 예배팀에서 한자리 할 수 있을까 하구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인류 역사상 첫 살인 사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2] 그런데 성경에는 가인과 아벨 사건 이전에는 제사 혹은 예배라는 말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임재안에 살았습니다.   그 자체가 일종의 예배하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가인과 아벨의 예배드리다가 일어난 사건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의 일입니다.

그럼 가인과 아벨은 누구한테서 제사드리는 법을 배웠을까요? 어느날 갑자기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볼까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확실히 나와있지 않지만 아버지인 아담에게 배웠을 것이고 아담은 하나님에게서 배웠을 것이라는 추측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3] 그래서 비록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지만 아담은 계속해서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다고 했으니 사람의 예배를 계속 받고 계셨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제사와 예배는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것일까요? 제사는 영어로 sacrifice 즉 희생인데 주로 가축들이 제사에 희생 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제사는 고대 문화에서 드려졌던 예배의 한 형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실제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영적 예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4] 그래서 이 글의 목적상 제사와 예배를 같은 개념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5]

물론 이 예배를 드리다가 가인이 아벨을 죽이게 되는데 이것이 인류 역사상 첫 살인 사건이고 그 첫 살인 사건이 다름아닌 바로 예배 때문에 벌어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예배 때문에 인류 역사상 첫 살인을 저지른 후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서”[6] 놋 땅에 거주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비록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여전히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의 아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의 임재안에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제사의 전통은 이제 사람들이 온 땅에 퍼져나가면서 어느 문화에서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전통이 되었습니다. 물론 제사의 대상은 달라졌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제사는 거의 모든 인간 문화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노아의 제사

아벨 이후 아담의 셋째 아들인 셋의 계보를 통해서 계속 이어진 제사는 노아의 홍수 이후에 다시 성경에 나타납니다. 땅이 마른 후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제일 처음에 한 것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린 일입니다. 방주안에서 오랜동안 있었으니 방주에서 나오면서 정리할 것도 많았을텐데 노아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앞에 제사를 드립니다. 역시 하나님이 의인이라고 여기신 노아입니다. 또 한가지 주지할 것은 성경에 아벨 이후 노아때까지 제사라는 말이 없지만 노아가 제사를 드린 것으로 보아 그 전통이 계속 되어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제사

하나님이 드디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믿음과 복의 조상이 되게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자리에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제사 행위를 이삭은 늘 옆에서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죽은 후 이삭도 아버지를 따라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습니다.

아브라함의 제사 행위는 그의 자손에게만 전승된 것이 아닙니다. 이삭의 색시를 구하기 위해 라반에게 보내어진 아브라함의 종도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했다고 했습니다.[7] 그리고 이삭의 아들인 야곱도 제단 쌓는 것을 계속해 나갑니다. 이렇듯 성경의 저면에는 항상 예배라는 것이 깔려있습니다.

-계속-

www.leadworshiperschool.com

장선욱 타이드워터 한인침례교회 예배 디렉터 D.W.S.

sunnychang78@gmail.com

[1] 고린도전서 13:13

[2] 창세기 4:3-12

[3] 어쩌면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주기 위해 죽여야 했던 동물을 통해서 앞으로 세상에서 예배하는 법을 하나님이 가르쳐주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희생 동물의 죽음은 먼 훗날 예수님의 속죄 희생양을 암시하며, 이제 예수님의 돌아가심으로 해서 더 이상 희생 동물을 죽일 필요가 없게 됩니다.

[4] 로마서 12:1

[5] 물론 제사 제도는 예배의 한 방편이라는 것 외에도 아주 깊은 신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희생 제물이 예수님의 죽음까지 연결되는 신학적인 깊이를 다루는 수많은 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은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예배를 조명하는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 제사와 예배는 서로 같은 의미라고 해 두겠습니다.

[6] 창세기 4:16

[7] 창세기 24: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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