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에 시작된 현대판 예배 전쟁은 CCM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교회에 들어옴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CCM이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으로 문자적 번역을 하자면 “동시대의 기독교 음악”입니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의 CCM이 있었고 종교 개혁 당시의 CCM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CCM은 문자적 해석을 떠나서 록 뮤직을 바탕으로 한 현대판 기독교 음악을 말하며 찬송가와 대조되는 말입니다.
CCM이 교회에 들어오자 찬송가를 위주로 전통적인 예배를 보던 어르신네들이 대반발을 합니다. 어떻게 그런 세속적인 음악이 가사 조금 바뀌었다고 신성한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느냐, 록 뮤직의 뿌리를 본다면 이것은 사탄의 음악이다, 신코페이션(엇박)이 많고 백비트가 있어서 전혀 거룩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너무 시끄럽다, 등등.
다른 많은 것들 중에서 왜 이렇게 사람들은 음악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일까요? 음악은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태중의 아기는 임신 후5개월부터 귀가 100% 작동을 한다고 합니다.[1]
신경 과학자 레비틴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음악 감상, 연주, 작곡 등의 활동은 지금까지 밝혀진 모든 두뇌 영역과 신경 하부조직을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모짜르트 음악을 20분정도 들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그저 터무니 없는 소리는 아닌 듯 싶습니다.[2]
종교 개혁의 거성이었던 마틴 루터는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스스로 수많은 찬송시를 지었고 거기에 곡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음악이 사람에게 미치는 크나큰 영향력을 두려워 한 칼빈은 교회 안에서는 시편을 노래하는 것 외에는 일체의 음악을 금했습니다. 종교 개혁의 또 하나의 거성 쯔윙글리는 자신이 실력 있는 음악가 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일체의 음악을 금했습니다.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기독교인은 CCM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많은 분들이 성경을 근거로 CCM을 반대하지만 CCM의 문제는 성경 해석의 문제가 아닙니다.[3] 그보다는 친근함과 친근하지 않음의 문제, 새로운 리듬에 대한 거부감, 소리의 크기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새로운 악기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각 세대마다 자기의 노래가 있습니다. 찬송가 세대가 있고 CCM 세대가 있습니다. CCM은 단순히 록 뮤직에서 왔다고 해서, 세상 음악과 비슷하다고 해서 과연 사탄의 음악이며 교회에 나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일까요?
마틴 루터도 “내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시를 지어 놓고 여기에 과연 당시 술집에서 많이 불려지던 곡을 자기의 찬송시에 붙일 것인가 말 것인가 참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찬송가가 클래식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도 포크 멜로디(New Britain)를 죤 뉴튼의 찬송시에 곡으로 붙인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애창 찬송가의 곡들이 유행가에서 왔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진가가 떨어질까요?
지금은 교회 음악의 정통 악기라고 여겨지는 피아노도 처음에는 술집에서 쓰는 악기라는 선입견 때문에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혹시 기타나 드럼, 혹은 키보드도 몇 백 년이 흐른 후 교회음악의 정통 악기라고 여겨질 때가 올까요?
필자는 음악은 옳고 그름이 없는 중립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때와 장소에 따라서 적절한 음악이 있고 부적절한 음악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고 싫어하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입니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에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 가입니다 (association). 만약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들으면서 광란한 무대와 타락한 가수를 머리에 떠올린다면 그것은 예배에 부적절한 음악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 이상 그런 안 좋은 이미지가 지워진다면 과연 그 음악에도 구원이 있을까요 (한국말로 딱히 좋은 번역이 없는데 영어로는 Can music be redeemed?)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노사연의 “만남”이라는 곡에 예수님을 찬양하는 가사가 붙을 수 있을까요?
매사츄세스 주에 다민족 사역을 크게 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필자가 다니던 신학교에 강의를 하셨습니다. 수업 도중에 당신의 교회에서 부르는 새찬송가를 복사해서 나누어 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의 전통 민요 “아리랑”에 크리스찬 가사를 붙인 곡이었습니다. 필자는 “아리랑”에 얽힌 슬픈 사연과 역사를 알기에 가사를 읽기 전에 곡만 들어도 아련한 감정이 들어왔으니 도저히 가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신학생들은 그런 사연을 전혀 알 수 없으니 참 아름다운 곡이라고 하며 열심히 따라서 은혜롭게 불렀습니다.
필자가 바라는 예배가 있다면 그것은 신앙의 연륜이 있으신 분들이 젊은 세대의 발랄한 찬양을 들으며 “나는 못 따라 하겠지만 참 젊은이들의 열정이 좋구나. Praise the Lord!” 젊은 세대는 찬송가나 클래식 성가를 들으면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어려운 시절 지나며 저런 찬송을 하면서 신앙을 지켰구나. Praise the Lord!” 할 수 있는 그런 예배입니다. 찬송가와 CCM이 조화를 이루는 그런 예배입니다.
- Acknowledge that what reaches you isn’t necessarily what reaches others. Just as there are different tastes in food, there are very different tastes in music.
- Don’t demand that the entire worship service be for you. Maybe someone is being reached by the music that you don’t like.
- Don’t be divisive and spread discontent to others. The Bible doesn’t say much about music styles, but it has a lot to say about church unity.
- Find musical fulfillment in other ways. You don’t have to leave your church. Listen to tapes or attend meetings during the week where your style of music is done well.
- Participate in worship even if the musical style isn’t your favorite. If visitors see you scowling or shaking your head, ridiculing or pouting, they’ll conclude, “This isn’t for me.” But if they see a united church singing with joy and enthusiasm, they are impressed and convicted.
[1] Daniel J. Levitin, This is your brain on music, New York:NY, Plume 2007, p.9
Music listening, performance, and composition engage nearly every area of the brain that we have so far identified, and involve nearly every neural subsystem. Could this fact account for claims that music listening exercises other parts of our minds; that listening to Mozart twenty minutes a day will make us smarter?
[2] Levitin,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