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학생이 교수님에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우리가 예배드렸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요?” 교수님은 이 학생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네가 변화되었으면 예배드린 거야.”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감동 있는 예배, 은혜받는 예배를 사모합니다. 내 마음에 감동을 주는 찬양, 설득력 있는 설교, 뜨거운 통성 기도, 성령 체험, 치유, 방언 등등. 하나님이 사람에게 감정을 주셨으므로 예배 가운데서 일어나는 이러한 체험들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심을 다해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가운데 이러한 체험들이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문제는 예배당을 나오면서부터입니다.
혹시 예배 가운데에서 얻는 이러한 귀한 체험들을 예배당 문을 나서면서 다 내려놓고(?) 1주일 동안을 아무런 변화 없이 살다가 또 주일이 되어 지난주에 경험한 그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사모하면서 예배당에 들어서지는 않는가요? 야고보 사도의 말씀이 경고를 줍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22 <개역개정>
야고보 사도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7 <개역개정>
이 말을 예배와 관련해서 다시 말하자면, “변화가 없는 예배는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다면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한 모습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린 예배의 증거입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결국 이스라엘은 이방신을 섬기다가 북왕국 이스라엘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남왕국 유다는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갑니다. 그렇게 혹독한 포로생활의 맛을 보고 나서야 이스라엘은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던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예레미야 애가> 포로생활의 고생을 하고 난 후 하나님은 약속대로 정복 국가 왕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키십니다.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예배의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신약에 와서는 다시는 우상숭배의 문제가 거론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 믿어보려는 열정에 율법주의가 생깁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올바른 예배의 회복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성을 너무 잘 아시는 하나님은 이미 구약 말기 선지자들을 통해 새로운 예배를 가르쳐주십니다. 동물을 잡고 피를 흘리던 구약의 제사는 예수님이 마지막 희생양이 되심으로 끝이 납니다. 더 이상 피를 흘려야 하는 제사는 없어집니다. 그 대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율법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판에 새겨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요엘 선지자의 말씀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요엘 2:28-29 <개역개정>
에스겔도 확실하게 성령님의 오심을 예언합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26-27 <개역개정>
과연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에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을 보내주십니다. 새 율법책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의 마음 판에 율법을 새겨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받게 되는 성령님입니다.
신약에서 집중적으로 예배를 다루는 책에는 히브리서와 요한 계시록이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예배에 관한 부분은 예배학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이므로 나중에 다시 자세하게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이제 성경에 흐르는 예배 전쟁을 마무리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밧모섬에 유배를 간 요한이 환상 가운데 보았던 천상의 예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4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요한 계시록 4:1 <개역개정>
그리고 앞으로 천상에서 일어날 예배에 대해 보여주십니다. 24 장로의 이야기가 나오고 유리 바다 이야기가 나옵니다. 장로들이 어린 양 예수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모든 만민이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찬양 드리며 예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런 다음 이러한 천상의 예배가 있기 전에 있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묵시를 주십니다.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 사람을 지으신 것이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요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 계시록에서는 앞으로 있을 천상의 예배를 보여주시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과연 우연만일까요? 아니면 필자가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성경은 시작부터 끝까지 예배 전쟁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일까요?
다음부터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예배 전쟁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