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국 교회에서 젊은 찬양 인도자가 새로 채용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찬양 팀원들과 연습을 했고 프로페셔널하게 실수 없이 잘 찬양 인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찬양 인도 도중에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가까스로 수습을 하고 얼굴이 빨개져 있는데 예배 후에 젊은 여성분이 오더니 “오늘 실수하셨네요!” 그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자꾸 실수했던 생각이 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아픈 데를 콕 쑤신 겁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그 여성분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그거 앞으로 자주 해주세요!” 영문을 몰라 하는 젊은 찬양 인도자에게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래야 좀 인간미가 풍기잖아요. 그동안 너무 완벽해서 나 하고는 너무 거리가 멀게 느껴졌었어요.”
2주 전에 필자가 1부 예배를 인도하던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세곡 중에 두 번째 곡은 주로 빠른 템포의 찬양을 선택하는데 드럼 스틱 카운트 인이 시작되고 키보드가 들어오고 필자가 기타를 치는데 그만 제가 리듬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두 번째 마디, 세 번째 마디, 네 번째 마디가 지나서야 뭔가 잘 안 맞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예전에는 이런 상황에서 식은땀이 등에 주룩 흐르고 얼굴이 빨개졌을 터인데… 이제는 1부에 나오시는 성도들과 맘이 많이 편해졌나 봅니다.
“All stop. 하하하! 제가 리듬을 잊어버렸네요.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드럼 카운트 인 플리즈!” 능청스럽게 한번 씩 웃고는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잘 넘어갔습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1990년대와 2000년대는 예배에서의 (특히 CCM 찬양에서의) 탁월성(excellence)을 추구하던 시대였습니다. 탁월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지론은 우리의 하나님은 탁월하신 하나님이므로 우리도 또한 모든 일에 있어서, 특히 찬양 음악에 있어서, 탁월함으로 예배함이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전문 음악인들을 투입했고 찬양 연습을 혹독하게 했습니다. 한참 잘 나가는 찬양 가수들의 CD를 틀어 놓고 그들의 연주와 음악을 따라가려고 노력했습니다.
Shout to the Lord로 전 세계에 알려진 호주 힐송 교회의 달린 첵은 그의 저서 Extravagant Worship (“넘치는 예배”로 번역됨)에서 탁월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탁월성이란 상세함을 뜻한다. 군중도 잘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탁월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 정도면 됐지”라는 단어를 아예 우리의 사전에서 금해야 한다. 그런 정신 상태로는 하나님의 전에 아무런 탁월성을 가져올 수 없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탁월성을 추구하다가 결국 예배가 목적이 아니라 이 탁월성이, 특히 음악 부분에 있어서, 목적이 된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마음 깊이 느꼈던 한 예배 인도자가 맷 레드맨입니다. 지금은 10,000 Reasons으로 많이 알려진 작곡가이지만 1990년도 후반에 레드맨이 사역하던 영국의 교회에서는 물밀듯 밀려오는 새로운 찬양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담임목사는 뭔가 빠진 것을 감지하고 교회의 사운드 시스템과 밴드를 당분간 폐지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찬양 밴드 임원들에게 물었습니다. “주일에 저 문을 열고 교회에 들어올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떤 예물을 가져옵니까?”
처음에는 이에 대해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가지 않아서 사람들은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 찬양을 하기 시작했고 마음이 담긴 절실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음악과 사운드 시스템이 다시 도입되었지만 이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에서 무엇을 예물로 드리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답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작된 찬양곡이 널리 알려진 The Heart of Worship(“마음의 예배”로 번역)입니다. 아래는 운율에 상관없이 좀 더 원문에 충실하고자 한 필자의 번역입니다.
1절 “음악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사라지면 나 그냥 돌아옵니다. 뭔가 주님의 마음이 축복하실 가치 있는 것을 드리기를 바라며. 노래 이상의 것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노래 자체는 하나님이 바라는 것이 아니기에. 겉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나의 마음을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나 이제 예배의 중심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주님에 관한 것입니다. 모두 예수님에 관한…”
“주님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에 관한 것인데 저는 그것을 다른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2절 “무한히 귀하신 왕. 얼마나 귀하신지 아무도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약하고 가진 것 없지만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나의 모든 하나 하나의 숨쉬는 것 까지도.”
이 중에서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이 구절이었습니다 (한글 번역에는 이 중요한 부분이 빠졌습니다. 어떻게 곡에 맞출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저도 답이 없습니다만.)
“주님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에 관한 것인데 저는 그것을 다른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