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동역자 조나단 목사님과 함께 작년 5월부터 International 예배를 시작하고 예배 디렉터로 사역을 해왔습니다. 시작하기 몇 달 전부터 동역자 조나단 목사님과 예배의 형식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한 가지 동의를 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인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해보지 않아서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성서일과에 따라 성경을 읽는 것을 예배의 한 부분으로 넣기로 했습니다. 영어로는 lectionary라고 하고 성경을 읽는 사람을 lector라고 합니다.
Lectionary라고 하면 천주교의 산물로 취급하여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중세 천주교에서는 무지한 평신도들이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할까 두려워하여 일반 사람들은 성경을 접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lector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라틴어로 읽었으니까 평신도는 방금 lector가 무엇을 읽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평신도에게 되돌려 준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사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500년이 지난 오늘날 오히려 천주교에서는 1960년대에 제2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성경을 평신도의 말로 읽게 하고 lectionary를 제공해서 정규적인 성경 읽기를 권장하고 있는데 비해 개신교 예배에서는 성경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배 가운데 성경을 읽는 것은 천주교만의 유산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구약의 느헤미야서에 보면 성벽을 재건하고 이제 그 감격 속에 에스라 성경 학자가 성경을 읽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이 펼쳐질 때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새벽부터 정오까지 장장 몇 시간을 읽어가는 가운데 듣는 이들은 모두 손을 들어 아멘 아멘 하면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경청했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이 회당이나 성전에 들어가 회당장이 건네주는 두루마리를 읽고 말씀을 전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물론 현대 개신교에서도 설교 말씀 전에 성경을 읽습니다만 lectionary 읽기는 그 읽는 자체가 예배의 한 일부이며 단순히 설교 말씀을 위해 해당 성경 구절만 읽은 것과는 다릅니다. 설교 말씀과 관련이 없이 성경의 구약에서 한 부분, 시편 한편, 서신서에서 한 부분 그리고 복음서에서 한 부분, 이렇게 성경의 4 부분을 읽습니다. 그러다 보면 3년 만에 성경의 중요한 부분을 다 접하게 됩니다. 물론 lectionary를 따르는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그 중의 한 부분을 설교 말씀 본문으로 채택합니다.
처음에는 우리 교회에서도 해보지 않던 것이라 몸에 배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영어권 남편들 때문에 International 예배에 참석했던 몇몇 분은 성경 읽기가 너무 어색하고 재미가 없어 남편들이 가기 싫어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한번도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필자는 예배는 안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의 예배라고 믿기에 그리고 성경 말씀이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기에 중지하지 않고 계속 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정착이 되고 보니 이제는 lectionary를 읽은 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것 같습니다. 특히 lectionary에 따른 성경 구절 모두가 교회 주보에 실려 있으므로 lector가 강단에서 성경을 읽을 때 주보를 보며 마음으로 같이 따라 읽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예배가 끝난 후 집에 갈 때에도 주보를 가져가 주중에 읽어볼 것을 권장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몇몇 사람들은 그것이 신앙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을 합니다.
또 한 가지 좋은 것은 처음에는 주로 사역자들이 돌아가며 읽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생활화되어 평신도를 중심으로 읽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중고등부 학생들도 돌아가며 강단에서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인지시키기 위해 읽기를 마친 후에 항상 “The Word of the Lord”를 덧붙여 말하게 합니다.
물론 이것도 일종의 공개 연설인데 처음에는 너무 빨리 읽거나 발음이 정확지 않아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횟수를 거듭하면서 점차로 말이 또렸 또렷 해지고 목소리의 크기도 적응이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말이 빠르기는 하지만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책들에 비해 뭔가 권위가 있고 신령한 책이라는 것을 이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성경을 강단에서 공개적으로 읽는 경험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렸을 때부터 성경 읽는 것이 생활화되고 자연스러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신학교에 다닐 때 이 lectionary reading을 프로젝트로 한 경험이 있고 그 때 준비한 자료가 있는지라 이제는 정식으로 lector training을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