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화합 16 – 찬양하지 않는 9가지 이유

세계 전역에서 예배 인도자(필자를 포함하여)들이 평신도들로 하여금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교회 예배 음악은 프로 뮤지션들이 평신도가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로 찬양을 불렀었습니다. 평신도는 저만치 뒤에서 구경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 이후 평신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그리고 그들이 부를 수 있는 곡조로 예배 찬양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쇄술의 발명으로 찬송가책이 다량으로 출판된 것도 평신도들의 예배 참여도를 한층 더 높여주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500년이 지난 오늘날 찬송가 책 대신 비디오 프로젝터로 가사를 스크린에 올리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찬송가/찬양 레퍼토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또다시 프로 예배 인도자들에 의해 대중 찬양은 점점 힘을 잃어갑니다. 한때는 평신도들의 예배 참여에 기여했던 현대 기술이 오히려 평신도들에게서 찬양을 빼앗아가는 현상을 빚어냅니다. 찬양은 어느덧 고도의 기술과 고난도의 콘서트가 되어버립니다. 평신도는 그저 이 프로 뮤지션들이 만들어내는 악기 소리와 가수를 능가하는 찬양 가수(?)들의 찬양을 들으면서 자신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 착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왜 평신도가 더 이상 찬양에 참여하지 않을까요? 9가지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1. 평신도들이 모르는 찬양

너무 빨리 보급되는 새로운 찬양을 부르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압박감에 찬양 인도자들은 매주 새로운 찬양을 교회에 소개합니다. 그러다 보니 평신도가 새로 소개된 찬양을 배우기도 전에 벌써 다른 새 찬양으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필자는 되도록이면 80/20 룰을 적용하려 합니다. 80%는 익숙한 찬양, 20%는 새로운 찬양. 그리고 새로운 찬양을 2주 3주 계속해서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항상 새로운 찬양을 원하는 찬양팀 멤버들에게서 올 수 있는 압박을 이겨야 합니다.

  • 대중 찬양에 적합하지 않은 찬양

홍수처럼 쏟아지는 모든 찬양이 대중 찬양에 다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필자는 듣는 찬양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이런 종류의 찬양을 예배에 도입하지는 않습니다.

  • 평신도들이 따라 하기엔 너무 높은 키

ccm 가수들의 음반을 들어보면 대체로 키가 높습니다. 그래야 힘이 실리고 듣는 이들의 감정을 고조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신도가 따라 하기엔 너무 높습니다. 평신도들이 소화할 수 있는 음폭은 아래로는 A(가)부터 위로는 D(라)까지 입니다. 대중 찬양에 사용하려면 이 음폭 안으로 변조를 해야 합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아침 예배는 특히 이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 주위 사람의 찬양 소리를 듣지 못함

스테이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너무 크면 평신도들은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의 찬양을 듣지 못합니다. 그 반면 너무 작으면 자신의 목소리를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므로 이 또한 대중 찬양에 방해가 됩니다. 적절한 수위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합니다.

  • 콘서트를 방불하는 조명 및 비주얼 아트

필자는 조명, 비주얼 아트, 등등을 활용하여 예배 환경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인위적 환경 조성은 오히려 평신도들을 산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예배 환경은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 평신도 찬양에 대한 낮은 기대치

어쩌면 예배 인도자들은 자신들의 찬양을 평신도들이 방청객으로 들어주는 것에 만족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평신도들로 하여금 그들이 찬양에 참여한다는 기대감이 없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신도들이 찬양에 참여하게끔 때로는 의도적으로 성경적인 이유를 설명하거나 인도를 해야 합니다.

  • 평신도들을 위한 찬양 레퍼토리의 부재

책으로 인쇄하기에는 새로운 찬양곡들이 너무 빨리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 현장이 아니면 찬양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현대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주일 예배에 부를 찬양곡을 카카오톡이나 교회 웹사이트에 미리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겠습니다. 특히 새로운 찬양이라면 악보만이 아니라 유튜브 링크를 보내줄 수도 있겠죠.

  • 찬양 인도자들의 과도한 애드립

찬양 인도자들이 애드립을 너무 많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intro나 outro 및 bridge 부분은 악보에 없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평신도가 100% 모든 찬양에 참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당한 애드립은 찬양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이럴 경우 평신도가 알 수 있도록 스크린에 띄우거나 찬양 인도자가 설명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 평신도들과의 교감 형성에 실패

때로는 찬양 인도자들이 자기만의 음악에 도취되어 평신도를 잊어버리고 대중 찬양의 목적을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훈련된 찬양 인도자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합니다. 평신도가 찬양을 부를 수 있도록 인도하고 반응을 잘 살피고 상황에 따라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 예배 인도자는 콘서트가 아니라 평신도들로 하여금 찬양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재인식할 때 예배를 또다시 평신도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