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화합 12 – 세례식 2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태복음 28:19 <개역개정>

세례가 맞을까요 아니면 침례가 맞을까요? 이 질문의 답을 위해 우선 단어 사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형평성을 위해 세례나 침례라는 단어 대신 baptism을 사용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8:19절에는 baptizo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럼 이 baptizo라는 단어는 그 당시에 물을 뿌리는 것을 의미했을까요? 아니면 물에 잠기는 것을 의미했을까요? 스트롱 희랍어 어휘 사전에는 “물에 잠기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빌 마운스의 온라인 희랍어 사전에도 “물에 담그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하드 카피 사전에는 “물을 뿌리거나 물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어 세례와 침례 두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데일이라는 성경 학자가 고전 희랍어 문헌에서 baptizo라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에 대해 방대한 연구를 한 결과 이 단어가 꼭 물에 잠기는 것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성경에서도 침례가 아닌 세례를 암시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1:38절에 예수님이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은 것에 바리새인들이 이상하게 여겼다고 기록이 되어있는데 이때 사용한 단어가 baptizo입니다.

세례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이로써 이 문제에 쐐기를 박았다고 주장하지만 침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제임스 데일이 baptizo라는 단어가 부자연스럽게 혹은 잘못 사용된 극소수의 사용법을 모조리 찾아내어 세례를 정당화한 것밖에는 별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baptizo는 물에 잠긴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물을 뿌린다는 의미로는 다른 단어가 얼마든지 있는데 왜 구태여 baptizo라는 단어를 사용했는가라는 논박입니다. 예를 들면 바울 사도가 송아지의 재를 뿌리는 것을 설명할 때는 rhaino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히브리서 9:13>. 또한 신약은 고전 희랍어로 쓰인 것이 아니라 코이네 희랍어(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던 희랍어)로 쓰였으므로 고전 희랍어에서 baptizo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연구한 결과는 별 의미가 없다고 반박합니다.

그보다 더 알 수 없는 것은 이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히브리어의 친척인 아람어를 사용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럼 아람어 원어에서는 어떤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이 문제는 해결책이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람어로 쓰인 신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어 자체 연구의 결과는 무승부입니다. 그럼 성경에서 혹시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세례를 옹호하는 학자들은 구약에 나타난 예수님에 관한 예언에서 단서를 찾습니다. 에스겔서 36:25에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를 정결케 하되”. 또한 baptism의 전신이라고 추측되는 유대인의 정결 의식은 물을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baptism 역시 민수기 8:6-7에 의한 ordination 즉 성직 서임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의식에서는 물을 뿌리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예수님의 baptism이 물에 잠기는 것이라면 예수님을 The Anointed One,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름에 잠긴 자”라고 해야 하나요?)

침례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적어도 신약에서는 baptism이 물에 잠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로마서 6:-3-6과 골로새서 2:12은 baptism을 죽어서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에 비유하는데 이 의식은 성직 서임과 상관이 없는 것이므로 굳이 예수님이 The Anointed One이라고 불리우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성경 외의 다른 기독교 문서 그리고 세속의 문서에도 대부분이 baptism은 물에 잠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 문서에는 물이 없는 경우나 죽어가는 사람을 baptize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물에 잠기는 baptism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디다케(Didache)라는 문서는 1세기 후반부터 2세기 초에 쓰였다고 추측합니다. 어떤 학자는 바울이 이방 전도를 하던 1세기 중반까지도 추측을 합니다. 이 문서에는 “baptism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흐르는 물에 잠기는 것이다. 그러나 흐르는 물이 없을 경우에는 고인 물에서 잠길 것이며 그것도 안되면 머리에 세 번 물을 뿌린다.”라고 되어있습니다. 만약에 디다케가 쓰인 시점이 바울의 이방 전도와 동시대라면 초대 교회의 의식을 설명하는 것이 되겠지만 2세기 초라면 초대 교회의 의식을 증명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2세기 중반에 쓰인 것으로 추측되는 Justin Martyr의 First Apology에는 “물에 씻다”라고 되어있는데 물에 잠기는 것인지 아니면 손이나 발을 씻는 것 정도인지 불분명합니다. 물론 Justin Martyr는 2세기 중반에 속하는 사람이므로 초대 교회의 의식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다음에 계속해서 이 문제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이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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