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화합 6 – 성찬식 1

성찬식 1

기독교 예배 의식 중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성찬식입니다. 성찬식은 어떤 면에서는 그저 간단한 의식 같지만 그 의미의 해석에는 이미 수백 권의 책이 나와있을 정도로 복잡한 의식입니다. 짧은 지면에 성찬식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고 필자의 지식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특히 필자에게 생소한 다른 교단의 이해) 평신도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만 그러나 아주 중요한 부분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침례식과 함께 성찬식을 예수님이 제정하신 두 가지 의식으로 인정하고 지난 2000년간 지켜왔습니다. 물론 성찬식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오갔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이를 행하여 예수님을 기념하라고 명령하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제자들과 지내면서 첫 성찬식을 제정하십니다.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누가복음 22:19 <개역개정>

영어로는 bread 즉 빵으로 번역이 되어있습니다만 유월절은 무교절 즉 누룩 없이 떡을 만드는 절기이므로 누룩으로 부푼 빵이 아니라 떡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번역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또 한 번 성찬식을 행하십니다. 성경에는 성찬식을 하고 나서야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그가 예수님인 줄 알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10일 만에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신 후 교회가 탄생하게 되는데 이들이 매번 모일 때마다 행하던 것 중의 하나가 성찬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도행전 2:42 <개역개정>

그런데 사도행전 2:46절에 보면 얼마나 자주 성찬식을 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사도행전 2:46 <개역개정>

초대 교인들은 서로 모일 때마다 떡을 떼었다고 했습니다.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5-26 <개역개정>

한글 번역에는 “때마다”라고 되어있어 얼마나 자주 했는지 불분명하지만 영어 번역에는 “as often”이라고 되어있어 가끔 생각날 때마다 하는 것이 아니라 1년에 한두 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만날 때마다 그러니까 최소한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성찬식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떡을 떼며”와 “음식을 먹고”는 비록 초대 교회 당시 한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했지만 두 개의 독립된 행위라는 것입니다. 즉 “떡을 떼며”는 예수님이 성찬식을 거행할 때 떡을 뗀 그 표현과 같은 것이고 “음식을 먹고”는 소위 love meal 혹은 agape meal이라고 하여 교인들이 모여 음식을 먹으며 친교를 했던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은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진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두 행위가 처음에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이루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두 행위는 서로 떨어져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행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성찬식은 이제 음식을 나누는 행위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인 예배 의식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여겼던 그래서 모일 때마다 행했던 이 성찬식은 중세에 와서는 천주교 예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의식이 이 성찬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성찬식이 예배의 절정이었습니다. 성당을 지을 때에도 성찬식이 거행되는 공간을 따로 구별하여 지었습니다.

물론 평신도에게 속해야 할 성찬식이 성직자만의 독점물이 되어버린 우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당시 이 성찬식의 의미를 의심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교단에서는 그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천주교의 남용에 너무 지나친 반대를 하다가 오히려 중요한 의식을 송두리째 내던져버린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500년이 지나 1960대에 천주교에서도 이 성찬식에 대한 의미를 재조명하고 평신도에게 되돌려주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 일부 개신교에서도 성찬식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고 예배의식 가운데 좀 더 자주 성찬식을 행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제자회에서는 매 주일 성찬식을 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리교회에 잠깐 나갈 때에도 현재 필자가 섬기는 침례교회보다는 성찬식을 더 자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리스도 제자회에서도 그랬고 감리교회에서도 필자에게 인상이 깊었던 것은 쟁반에 담은 크래커 부스러기가 아니라 실제로 큰 빵 하나를 목사님이 축사한 후에 교인 모두가 앞에 나가서 그 빵에서 조각을 떼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도 조그만 개인용 플라스틱 컵이 아니라 큰 컵에 담긴 포도주에 빵조각을 찍어 먹었습니다.

다음에는 성찬식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다루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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